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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칼럼

메켄지 선교사 자살 사건 어떻게 볼 것인가?

  • 관리자
  • 2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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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 쯤 교회 청년들과 함께 양화진 선교사 묘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백주년기념교회가 양화진의 관리를 맡은 뒤 시설이 많이 개량되었고, 한층 관람객에 대한 서비스가 좋아진 것이 인상적이었다. 묘지를 둘러보기 전에 먼저 자원봉사 하시는 분이 교육관 같은 곳에서 초기 한국에서 사역했던 선교사들을 파워포인트 영상과 함께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것을 보는 가운데 메켄지라는 캐나다 선교사를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서 본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아주 젊고 패기 넘치던 한 캐나다 선교사가 홀홀단신으로 입국하여 불과 2년 남짓 선교활동을 하다가 갑자기 병을 얻어 고생하던 중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선교활동이 어렵고 몸이 안 좋았기로서니 선교사가 현지에서 자살을 해?’ 그 순간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한한 선교사 중에 자살한 이도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된 순간이었다.

 

 

한동안 그 일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이번 학기 현대목회와 정신질환이라는 과목을 수강하면서 우울증자살에 대한 파트를 발표하게 되었는데 여러 조사를 하는 도중 갑자기 그 메켄지 선교사가 생각이 났다. 양화진에서의 설명은 너무나 짧아서 그가 왜 자살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기말 보고서를 쓸 때 메켄지 선교사의 자살을 심층 분석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자살에 대하여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게 있어서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작년에 있었던 전도사 아내의 투신 자살 사건 이야기를 접하면서 과연 신자가 자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지켜보며 물론 그의 죽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너무 미화되고 있지는 않는가, 자살에 대한 관대한 태도 때문에 모방하는 사례가 생기지는 않을까하는 우려가 들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메켄지 선교사를 중심하여 기독교인은 자살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할 지 연구해 보기로 하겠다.

 

 

 

. 메켄지 선교사의 삶과 죽음

 

 

윌리엄 메켄지(William J. McKenzie, 1861~1895)는 캐나다장로교회 출신으로 일찍부터 선교에 관심을 보여 핼리팩스신학교를 다니며 래브라도어 섬에 선교활동을 다녀오기도 하였고, 선교사로 일할 때 의료기술이 필요할 것이라 판단하여 의료기술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는 래브라도어에서 선교를 하던 중 조선에 관한 책을 읽고 조선 선교를 꿈꾸는데 직접 자기 돈 100달러를 캐나다장로교회 본부에 보내면서 자기를 조선 선교사로 보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선교본부가 난색을 표하자 메켄지는 직접 후원자를 모집하여 189312월에 개인 자격으로 조선 선교사로 들어오게 된다.

 

 

메켄지는 다른 선교사들과의 조율을 거쳐 훗날 조선 장로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지는 황해도 소래(松川)에 정착하게 되는데 이곳은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이 될 서경조가 살던 지역이기도 했다. 그가 소래에서 머문 것은 약 10개월로 선교 활동기간은 무척 짧았지만 그의 업적은 기간에 비해 무척 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활발한 전도활동으로 그가 있을 동안 교인 수가 15명에서 100여 명으로 크게 증가하였으며, 교인들과 더불어 예배당을 건축했고, 문서 사역과 의료 사역으로 많은 사람에게 복음의 접촉점을 제공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되었을 때 번하이셀이 그곳을 방문하고 쓴 일기에 소래에 60가구 중 2가구를 제외하고 모든 주민이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기록한 것을 볼 때 그의 영향력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의 선교활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선교하였고, 조선인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지대하였기 때문이다. 메켄지는 자기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동학군들을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대해 주어서 나중에 동학군들이 자신들의 무례한 행동을 사과하였고 나중에 동학교도들이 교회에 나오기까지 하였다. 조선인과의 동화를 가장 효과적인 선교방법으로 보았던 메켄지는 한복을 입고, 한식을 먹으며, 조선의 초가집에서 살았다. 그러나 조선적인 삶의 양식을 너무 급격히 받아들이다보니 육신은 날로 쇠약해져서 한국에 온 지 2년이 채 못된 18956,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소래교회 출신 서경조가 메켄지에 대한 존경을 표하며 그와 같은 목사를 파송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캐나다 장로교 선교부에 보냈고, 여기에 감동을 받은 캐나다 장로교 선교부는 공식적으로 조선선교를 하기로 결의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1898년에 캐나다 장로교에서 파송을 받은 맥래(Duncan M. Macrae)와 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 Grierson) 부부, 푸트(William Rufus Foote) 부부가 조선에 입국하게 된다. 메켄지는 캐나다 장로교에 있어서 조선 선교의 아버지이자 선구자가 되었던 셈이다.

 

 

사실 메켄지 선교사의 일대기를 조사하면서 좀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분명히 양화진에서 설명을 들을 때에는 메켄지 선교사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들었는데 내가 찾아본 자료에는 그런 내용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찾아보았고 장신대 김인수 교수가 쓴 논문을 통하여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 메켄지 선교사의 자살 사건을 기록하지 않은 글들은 그의 감동적인 생애에 비해 마지막이 그리 덕스럽지 못한 내용이라 굳이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전기를 보면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이 환경적 요인이 컸음을 말하고 있다. “그의 죽음은 기후와 열, 무리한 햇빛에의 노출과 음식물의 결핍 등이 원인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메켄지의 자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평양에서 선교하면서 메켄지의 죽음을 조사했던 웰스(James H. Wells)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의사로서의 나의 첫 책임은 메켄지씨의 자살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그는 고독과 격리와 도피생활과 조선 음식 등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외따로 솔내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가 제 손으로 제 몸을 쏘았을 때 고열로 인하여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그는 인간을 떠나 혼자 산다는 그릇된 이론의 희생이 된 증거가 명백하다.

 

 

백락준 박사 또한 메켄지의 죽음에 대하여 무더운 여름철에 일사병과 신열(身熱)로 인하여 정신착란을 일으켜 필경은 1895723일 권총으로 자살하였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권총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 그의 죽음에 대한 목회, 신학적 의미

 

 

자살로 일생을 마감한 메켄지의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의 마지막 행동이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무시한 불신앙적인 처사였기 때문에 그의 행적을 다 무위로 돌려야 하는가? 아니면, 백락준 박사의 견해대로 정신착란에서 비롯된 의도하지 않은 자살이었기에 그의 죽음을 일반적인 자살의 범주에 넣어서는 안 되는가? 이런 판단을 위해서는 먼저 자살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을 정리하는게 필요하다.

 

 

1. 자살이란 무엇인가?

 

 

자살은 자유로운 결단을 통하여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동 또는 자기 목숨에 죽음의 위협이 찾아왔을 때 그 위험을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피하지 않고 그 위험을 맞이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이 범주에 의하면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삶과 죽음의 선택의 기로에서 죽음을 택하는 순교자들도 자살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모든 자살을 다 나쁘다 평가할 수는 없다. 그 동기와 목적에 따라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정당화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하철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사람은 정당화 될 수 있다. 성경에서도 이웃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을 숭고하게 여긴다(15:13). 그러나 자신의 목숨을 버릴 때는 인간의 생명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일 때에 정당성이 있는 것이므로 단지 가정의 생활고를 덜어주기 위해 자살한다거나 정치적 이념이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면 우울증과 같은 극심한 정신적 혼란이나 치매 환자처럼 자유로운 결단이 불가능한 정신질환의 상태에서 자살하는 경우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 경우는 윤리적인 문제로 보기보다는 질병의 문제 곧 정신과적인 치료의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2. 메켄지 선교사가 죽음에 이르게 된 배경

 

 

위의 자살에 대한 범주를 놓고 볼 때 메켄지 선교사의 죽음은 자살로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행위자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장신대 김인수 교수도 그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의 최후는 스스로 자기 생명을 권총으로 쏘아 자살을 했다는 것이 된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자살이라고 말하기에는 맞지 않은 상황임을 명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그런 행동을 했을 때는 정신착란을 일으킨 후였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착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단지 일사병이나 신열이 났다고 그것이 자살로 이어지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다. 메켄지 선교사가 남긴 일기를 보면 그가 죽기 두 달여 전부터 몸이 아프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의 일기 중 마지막 부분을 잠깐 살펴보자.

 

 

* 61

 

오늘 아침 몇 사람이 방문했다. 양산을 쓰지 않고 세발자국만 걸어도 나는 일사병 증세를 느꼈다.

 

 

* 618

 

피곤한 몸이 아팠다. 오전에 몸이 불편하여 키니네 15알을 복용했다. 다소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기력이 없다.

 

 

* 623

 

지난 이틀 동안 거의 걷지를 못했다. 매일 한 두 차례 구토를 했다. 배편으로 서울로 가기로 결심을 했다. 내일 누군가 한 사람이 여기에 오도록 서울에 전보를 보냈다. 시간이 갈수록 수면을 취할 수가 없다. 오늘은 방문자를 사절하고 문밖에 나가지도 말아야겠다. 몸이 너무 쇠약해졌다...(후략)

 

 

이 후 그의 일기는 필체가 흐려져서 잘 알아볼 수가 없다. 그는 죽음 직전에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 것으로 알려졌는데 거기에 나의 마음은 더 이상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잘 보살펴 주시고 있습니다. 나는 너무 고통스러워 글을 쓰는 것도 몹시 힘이 듭니다라고 쓰고 있다.

 

 

그는 자살을 결행하기 전 이미 일사병과 신열 같은 육신의 질병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러한 고통은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을 유발하게 되었고, 수면 장애나 섭식 장애 등을 동반하였다. 이는 DSM-에서 말하는 우울증의 진단 기준에 포함되는 요소들이다. 자신의 심각한 질병은 우울증을 유발하는 주요한 생활사건 중 하나이다. 게다가 그는 홀홀단신으로 선교지에 들어와 고독하게 사역을 해왔다. 평소에는 그런 고독감을 잘 이겨냈을지 몰라도 병마와 싸울 때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의 외로움과 공허함이 무척 컸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우울증을 유발하는 주요 요소인 사회적 지지 결여라 볼 수 있는데 사회적 지지는 우울증을 유발하는 생활사건을 차단시켜 줄 뿐만 아니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게 된다. 만일 그가 결혼을 해서 부인과 같이 입국했더라면 그런 불행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결국 그의 자살은 두 달여간의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 따른 스트레스와 그와 동반되는 수면 장애, 섭식 장애로 우울증이 찾아왔기 때문인데 이런 상태에서 자신을 간호하고 위로해 줄 사회적 지지 기반마저 없음으로 더욱 상태가 심각해져서 주체적인 판단 능력 상실에 따른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보인다.

 

 

 

3. 신자의 자살, 어떻게 보아야 하나?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해마다 상승을 거듭해서 현재 OECD 국가중에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자살률의 증가는 기독교인이라고 예외는 아닌 듯 하다. 이미 지난 몇 해 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에는 꼬리표처럼 기독교인이었다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더 이상 자살을 불신자들의 영역으로 치부해 버릴 수 없는 대목이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중죄로 여기고 금해왔다. 어거스틴은 자살은 육체를 더럽히는 행동이 아니라 영혼을 더럽히는 행동으로 여기고 철저히 거부했다.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자살은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으로 도덕적인 잘못으로 규정하였다. 더구나 자살은 남겨진 가족과 이웃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악하고 회개의 기회를 주지 않으며 모든 용서의 가능성이 차단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종교개혁자들은 자살을 비윤리적 행위로 일관되게 비판했지만 자살과 구원의 문제를 연결시키지는 않았다. 자살에 대한 금지입장은 20세기에 이르러서도 로마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고수한 가치이다. 그래서 자살한 사람은 교회의 묘지에 묻히지 못하게 했는데, 미국과 캐나다의 교회묘지에서 묘지 경계선 밖에 안장한 묘는 모두 자살한 사람의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자살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성경은 자살이라는 특정한 행위에 대하여 직접적인 판단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흔히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말은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이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살과 연관된 구절들을 통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 지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성경에서 자살을 언급하는 본문은 삼손과 사울, 아히도벨과 시므리, 가룟유다 이 다섯 사람이 등장하는 사례이다. 이들의 죽음은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로서 징벌 또는 심판의 의미를 띠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왜 성경에서 자살에 대하여 명시적 언급을 하고 있지 않은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은 이미 십계명 중 제6계명에 해당한다고 보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것이 자신이 되었든지 남이 되었든지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에 저촉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에 손상을 가하는 중대한 범죄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자살에 대하여 정죄해야만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의도성과 계획성을 가진 자살의 경우와는 달리 기독교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자살의 경우는 대체로 우울증과 같은 일종의 정신질환 상태에서 결행되는 경우가 많고, 정신질환 상태에서의 자살은 윤리적 비판의 대상이 되기보다 질병치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메켄지 선교사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살 그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어떤 과정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또한 대다수의 자살자들은 어떤 동기와 과정을 통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알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그들의 죽음에 대해 쉽게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추론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성경 교훈에 기초한 일반적인 원칙 즉 자살은 큰 범죄이며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원칙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생명을 임의로 탈취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도피하려는 태도는 구원의 은혜의 상태와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살에 대한 관점이 개인의 자유의지 행사라는 측면에서 이해되면서 일체의 신학적 고려와 윤리적인 논의의 정당성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 하겠다. 또한 감성이 중시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자살자에 대하여 공과(功過)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죽음으로서 모든 허물은 덮어버리고 동정적인 시각만 지나치게 부각시킴으로 자살을 미화하는 듯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어서 우려된다.

 

 

 

4. 자살에 대한 예방과 대책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살에 대한 예방과 대처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개인적 차원에서 추진할 것이 아니라 교회공동체 차원에서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메켄지 선교사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독교인 자살의 주요 원인이 되는 우울증을 막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우울증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인 주요한 생활 사건, 미세한 생활 사건, 사회적 지지 결여 중에서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부분은 사회적 지지 결여 부분이다. 교회가 나서서 심리적, 영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지체들을 격려하고 지지해 주는 것만으로도 교회의 건강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심방 오신 목사님이 기도를 해 주면서 던진 참 힘들겠다는 말 한마디에 펑펑 울고 신앙을 다잡고 기도로 고비를 극복했다는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살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본인 책임이지만 개인 신앙의 차원을 떠나 사회적인 문제 즉 교회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할 때이다.

 

 

또한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우고 가르치는 교육도 중요하다 하겠다. 오늘날 경제 중심, 서열 중심, 성공 중심의 가치가 자리잡힌 사회에서는 인간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게 되어있다. 그저 당신은 사람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입에 발린 멘트가 아니라 목회자가 말씀을 통해 그 어떤 가치보다 생명이 소중함을 가르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낙태반대운동, 입양운동 등 실제적인 생명보존에 연관된 활동을 함으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극단적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담소를 운영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 2007목회와 신학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자살 충동과 관련해서 목회자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는지에 대해 18.8%만이 도움을 받았다고 응답했는데, 도움받지 못한 이유로 17%부끄러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해서였다고 한다. 또한 소문 날 것 같아서라는 응답도 5.6%를 차지했다. 이는 교인들이 상담가로서 목회자를 상당히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교회에서 이러한 고백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양쪽 모두 어색해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적 연대 가운데 상담소를 운영하는 것을 생각해 볼만하다. 지역 교회들이 경제적으로 후원하고 지원하며 연대하는 상담소를 운영하여 언제든지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상담받도록 하는 것이다.

 

 

 

. 결 론

 

 

본인은 메켄지 선교사의 죽음을 분석하였고 그와 연계된 목회 신학적 의미를 고찰하여 보았다. 메켄지 선교사는 조선에 대한 사랑과 선교적 열정을 가지고 입국하여 2년 여의 짧은 선교활동을 펼치다가 권총자살로 일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의 자살은 의도성과 계획성을 가진 자살이 아니라 육신의 질병과 그로 인해 피폐해진 정신상태에서 이어진 우울증으로 인한 우발적 자살이라고 보아야 한다. 자살이 명백한 범죄이긴 하지만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까지 윤리적 비판을 가할 수는 없다. 이것은 암()과 같은 심각한 질병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자살에 대한 동정적인 시각을 마냥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물론 성경이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가르치지는 않지만 십계명의 6계명에 나오는 살인하지 말라는 규정에 포함되기 때문에 자살은 살인죄와 같이 무서운 범죄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자살이 큰 범죄라는 사실과 함께 생명의 존귀함을 끊임없이 가르쳐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방과 대책 마련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살은 교회 공동체 전체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연약한 자들에게 사회적 지지층이 되어 주어야 하며 지역 상담소를 운영하여 도움을 주는 방안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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