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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칼럼

교회 문턱을 높여야 한다.

  • 관리자
  • 2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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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우리 조국교회는 뭇매를 맞는다. 이제는 교회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동정해 줄 사람들도 많지 않아 보인다. 드라마에서 기독교인의 캐릭터가 정상적이지 않은 것에 유감을 표해도 '실제로 너희들은 그렇지 않느냐'는 냉랭한 반응이 주를 이룬다. 지난 날에는 기독교인이라고 내세우는 것이 시대를 앞서 가는 사람이라 여김받고 자랑거리가 되었으나 이제는 마치 파렴치범이라도 되는듯 부끄러운 이름이 되어 버렸다



누가 이렇게 주님께서 세우신 이 고귀한 교회를 망쳐버렸는가교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지만 특별히 목사들이 이 책임을 져야 한다. 목사들이 대형화, 목회 성공에 눈이 멀어서 사역 확장에만 매달린 결과가 이 모양이다. 사람들 끌어 모으느라 교회 문턱을 너무 낮추어 버렸다.

 

 

예수님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무나 제자로 삼지 않으셨다. 심지어 당대 부자 엘리트 청년조차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부담을 주셔서 돌아서게 만드셨다. 아마 이 시대 목사들이었다면 돈도 있고 열심도 있는 청년이니 무조건 오케이였을 것이다.

 

 

물론 교회는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나 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초대교회 문헌을 보면 새신자가 세례를 받고 정회원으로 받아들여지는데 보통 3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 세례라는 것도 지금 우리처럼 1-2주 교육받고 바로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니라 3년을 꼬박 훈련받고 검증이 되어야 세례를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초대교회 당시에 기독교인이라고 무슨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로마정부에 탄압을 받는 처지였는데도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꾸역꾸역 교회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공짜를 좋아해도 공짜는 별로 가치없게 여긴다. 내가 돈 주고 산 책은 귀하게 여겨도, 남이 읽어보라고 그냥 준 책은 잘 읽지도 않고 하찮게 여기는 것이 사람이다. 지금 이 시대에 복음은 팔다남은 떨이 제품 취급을 받고 있다. 목사들이 그리스도의 피값을 치러야 했던 구원의 복음을 마치 장날표 싸구려처럼 여기고 헤프게 취급한다.

 

 

새신자들을 VIP라 칭하면서 제발 교회 한번만 와달라고 읍소한다. 그들을 위해 예배까지도 인간을 위한 공연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예배의 주인은 하나님인데 손님인 우리가 주인을 밀어내고 우리 맘대로 예배를 좌지우지 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고려하지도 않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은혜를 받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부담을 안 느끼고 지루하지 않도록 구성할까' 하며 사람들을 의식하며 예배를 드리려 한다.

 

 

이런 마당에 어떤 이들은 여전히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다, 교회 문턱이 높다고 하며 더욱 세상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없는 교회가 되려고 안달을 한다. 그럴 생각이면 교회 문을 닫고 그냥 문화센터를 만드는게 낫다. 지난 20여년간 교회는 하향곡선을 그리는동안에도 천주교는 비약적으로 성장해왔다. 그런데 어디 그들이 예배가 딱딱하고 고루하다며 우리처럼 열린예배를 추구한 적이 있던가? 여전히 그들이 드리는 미사는 예전과 다를바가 없다. 그럼에도 천주교회로 사람들은 몰리는데 반해, 문턱을 낮출때로 낮춘 교회는 왜 이 모양인가?

 

 

나는 교회와 복음을 싸구려로 만든 목사들로 인해 화가 난다.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말씀에서 벗어난 자를 권징하여야 한다. 그저 주일 한 번만 교회 와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하고 앉아 있을텐가지금 한국 기독교인이 800만이라고 하는데 더 몸집을 키울때가 아니라 제대로 말씀대로 신앙생활 하지 않는 자들을 엄하게 다스려 그 숫자를 줄여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숫자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다. 창세기 11장을 보면 수많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바벨탑을 건설해서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는데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세상 나라를 대항할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면서 달랑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부르신다. 미디안 군대와 대항하기 위해 하나님이 부르신 용사는 단지 기드온과 삼백용사 밖에 없었다. 숫자로 세상과 겨뤄보겠다는 태도는 세상 나라의 논리이다. 교회여, 제발 문턱을 높여라.


2013.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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